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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이스라엘

♤50m 남은 통곡의 벽~예루살렘

by 은빛드보라(Deborah) 2013. 4. 4.

day 7
3월 2일(토) 2013년
일정: 예루살렘-베들레헴-예루살렘

예루살렘-비아돌로로사(1~14 지점)-통곡의 벽-예수 승천 기념교회- 주기도문 교회-눈물교회-황금돔, 성전산 및 예루살렘 시내 조망(기드론골짜기,분문, 흰놈의 골짜기, 압살롬 무덤)-겟게마네동산 만국교회-시온산 마가다락방-다윗성-다윗왕의 가묘-가야바의 집터-예수님 고문받고 갇힌 지하 감옥-베들레헴- 예수 탄생 동굴 교회-목자들의 들판 교회-쇼핑센터-숙소(예루살렘)

 

 비아돌로로사- 주님이 걸어가신 그 고난의 길을 주님과 함께 걸으면서 지금까지의 나의 삶을 돌이켜보고, 나를 향한 님의 음성을 듣기를 간구하였던  그  십자가의 길순례를 마쳤다. 허둥지둥 사진찍고 메모하고 얼른 김경식 목사님의 뒤를 좇아가야만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주님의 고난을 깊이 묵상할 그런 시간적인 여유는 절대 없었다. 다만 성육신 하여 나의 구주가 되시고, 부족하고 허물 많은 나를 사랑하시고 지금까지 은혜로 인도하심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마쳤고 곧이어 통곡의 벽으로 간다고 한다

 성지순례 떠나기 전 사전교육을 받을 때에 강사목사님이 기도문을 써 와서 한장은한 장은 성벽에 꽂아 놓고, 한 장은 성경책에 꽂아 두고 서귀국 후 그 걸 보면서 기도하라고 하셨다. 기도문을 쓰다 보니 A4용지로 한 장 가득이라 아예 프린트해서 갖고 왔는데 아무 말 없기에 오늘 새벽엔 십자가의 길만 순례하고 아침 먹고 통곡의 벽을 가는 줄 알았는데. 어머나 세상에~~ 십자가의 길과 통곡의 벽은 같은 동네로 십자가의 길 순례 후 통곡의 벽으로 가는 게  당연지사라고... 그래서 기도문 통곡의 벽에 꽂는 일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통곡의 벽을 보고는 실망했다.  벽은 모조리 막아 놓았고 공사 중이고 한 쪼가리 달랑 남겨 놓았는데 그것 도남과 여를 구분해서 들어가야 한다. 또 우리 순례팀이 도착한 날은 토요일 아침인데 안식일이라고 사진도 못 찍게 했다. 유대인처럼 차가운 벽에 볼도 대지 않았고, 벽에 기도문은 꽂지 못했으나 나의 기도를 주님이 다 들으시고 주님의 뜻대로 응답하여 주실줄 믿고 아멘~

 

 통곡의 벽(Western Wall)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은 AD70년에 로마에 의해 파괴되었고, 성전을 둘러싼 성벽 서쪽에 길이 50m의  벽체만 남겨진 것이 "통곡의 벽"이다. 총 높이는 18m이고 밑에서 7단까지의 돌은 파괴되지 않고 남은 성벽이며 8단부터는 아랍인들이 쌓은 것이다.
BC 20년에 헤롯왕에 의해서 지어졌고 긴 유랑 시대에 유대인들은 해마다 한번씩 이곳에서 성전의 파괴를 한탄했다. 유대 민족의 신앙의 상징이자 전 세계의 유대인의 순례지이며 남자와 여자가 들어가는 입구가 따로 있고 유대인의 안식일인 토요일에는 사진을 찍지 못한다.

구약성서에 의하면 솔로몬왕은 에루살렘에 장엄하고 아름다운 성전을 세웠다고 한다. 그 후 성전은 전쟁 등으로 파괴되었으나, 헤롯왕이 예수그리스도 시대에 재건하였다. 이 벽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성전의 서쪽 일부라 여겨 '서쪽벽(Western Wall)'이라 불렸다. '통곡의 벽(Wailing Wall)'이란 명칭도 자주 사용하는데 이 용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유래가 전해진다. 하나는 예수가 죽은 뒤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많은 유대인을 죽였는데, 이 같은 비극을 지켜본 성벽이 밤이 되면 통탄의 눈물을 흘렸다는 설에서 유래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유대인들이 성벽 앞에 모여 성전이 파괴된 것을 슬퍼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다. 

통곡의 벽은 유대인들과 팔레스타인 아랍인들 사이의 오랜 분쟁거리로 남아있다. 유대인들에게 이 벽은 '약속의 땅'인 이스랄엘의 상징이지만,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에게 바위사원과 알 아크사 모스크에 속한  이슬람 성지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둘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어 1929년에는 '통곡의 벽 사건'이라 불리는 폭력 및 대치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종교 분쟁은 1928년 9월 일부 유대교 신자들이 남녀가 따로 모여 앉아 예배를 올려야 한다는 유대교식 집회를 위해 벽에 막과 분리대를 설치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슬람교도들은 자신들이 성지라 여기는 곳에 일방적으로 공사를 하는 유대인들에게 큰 분노를 느꼈고 돌을 던지며 이를 제재하려고 했다. 당시의 분쟁으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유대교와 이슬람교 사이의 종교적 감정이 크게 악화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예루살렘이 이스라엘과 요르단으로 분할되면서 이 성벽은 요르단에 속하였으나, 1967년 6월의 제3차중도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구시가지를 점령하여 성벽은 이스라엘로 넘어왔다. <출처: 두산백과-역사와 지리>

 

 

 

 

 

 

 

 

 

 

 

웬페션?

 

 

 

호텔로 돌아가 아침 먹고 다시 예루살렘 순례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