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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중앙교회/바이블아카데미

♤개인적 종말론{종말에 대한 이해}

by 은빛드보라(Deborah) 2013. 11. 22.

 

 

굿모닝3

           종말론(THE DOCTRINE OF THE LAST THINGS)

 

          <종말론의 의미와 구분>

종말론(eschatology)이란 최후, 마지막이라는 의미의 헬라어 에스카토스(eschatos)에서 유래된 말로서

말세(벧전 1:20), 마지막 때(요일 2:18) 라는 여러 구절들을 그 기초로 하고 있다.

종말론은 단어의 의미 그대로 모든 것의 마지막에 일어날 일들에 관한 이론을 뜻한다. 종말론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에 관련된 여러 가지 사건들이지만, 보다 정확한 의미는 인간의 사후(死後)문제와 우주의 종말 이후에 일어날

일들에 관한 것까지 포함된 만물의 최종적 완성에 대한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종말론은 단순히 하나님의 초월적 능력의 개입으로 인한 이 세상 질서의 종결과 영원한 나라의 시작으로만 이해될

            것이 아니라 창조 이전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쁘신 뜻에 의해 작정하신 신적작정(divine decree), 즉 창조로부터

            종말에 이르는 전 우주와 인류에 대한 그분의 온전한 계획의 완성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종말론은 인간의 죽음과 영생의 문제, 죽음으로부터 부활까지에 이르는 문제 등을 다루는

            개인적 종말론(individual eschatology)그리스도의 재림과 천년왕국, 죽은 자의 부활과 최후의 심판,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 곧 최후의 상태에 대한 문제 등을 논의하는 우주적 종말론(cosmic eschatology)의 두 부분으로 나누게 된다.

 

        <종말론의 중요성>

마지막 일들에 관한 이론(doctrine of the last things)은 기독교에만 독특하게 존재하는 것이아니고. 인간의 삶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있는 곳이면 언제나 종말에 대한 관심과 물음이 제기되어 왔다. 특히 종교의 영역에서는 가장 관심이 집중되는

분야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심은 종교의 본질에 대한 진위성 여부에 관계없이 나타나는 현상으로, 거짓 종교든,

원시적인 종교든, 좀 더 발전된 종교든, 그들 나름대로의 종말론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종말론은 시대와 상황을 초월한

인간의 궁극적 관심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종말에 대한 논의처럼 사람들의 입장을 극단적으로 갈라놓는 주제도 그리 많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종말의식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한 나머지 모든 것을 종말론적 시각에서 판단한다. 극단적인 종말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이들을 가리켜 종말론 열병론자(eschatomania)라고 한다. 예를 들면 한 때 우리 사회를 혼란과 혼돈으로

몰고 가고자 했던 1992년의 소위 시월 허풍사건의 주역들인 다미선교회의 시한부 종말론자들과 같은 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또 어떤 사람들은 종말이라는 사건에 대해서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은 지금껏 살아 왔듯이 현실의 세계가

계속 진행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그들의 생각 속에 들어 있고, 종말에 대한 논의는 하나의 공상에 불과하다고

여겨지며 중요한 것은 현재의 삶이지 막연한 미래에 대한 공상적 논의가 아니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극단적인 생각을 가진 자들은 종말이라는 개념 그 자체에 대해 지나치게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종말론에 대한 논의 자체를 회피하며, 이에 대한 혐오 속에 공포의식을 느끼는, 말하자면 종말론 공포증환자(eschatophobia)

같은 이들도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의 경우 있어서 종말은 인생에 있어서 지대한 관심의 분야이다. 인간은 어디서 왔으며, 장차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물음은 가장 기본적인 생의 욕구인 것이다. 특히 기독교의 경우 종말론은 대단히 중요한 신학의 한 분야다.

그래서 종말론은 신학의 면류관이다”(Pohle) 라고 할 정도로 종말론에 대한 신학적 관심은 지대하다. 왜냐하면

기독교 신학의 구성체계를 볼 때, 다른 모든 분야들이 상호 유기적 관계 속에서 그 체계를 구성해 오다가

최종적인 결론으로서 도달해야 신학의 분야가 종말론이기 때문이다.

 

독교 신앙은 역사의 종말이 올 것임을 믿으며, 역사의 마지막에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것을 기대한다.

신앙인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질 마지막 날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영원한 세계에 들어 갈 것을 최종적인 희망으로 삼는다.

이 도래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은 구속사의 정점으로서 종말의 사건에 의해 성취된다. 이러한 점에서 기독교 신앙과 신학은

그 핵심에 있어서 종말론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1편 개인적 종말(INDIVIDUAL ESCHATOLOGY) -  1장: 육체적 죽음(THE PHYSICAL DEATH)

                                                                         2장: 영혼의 불멸(IMMORTALITY)

                                                                         제3장: 중간상태(THE INTERMEDIATE STATE)

 

 

     ??

          제1장 육체적 죽음(THE PHYSICAL DEATH

 

1.육체적 죽음의 성질(The Nature of Physical Death)

죽지 않고 영원히 살고 싶은 욕망은 인간의 가장 큰 생의 욕구였지만, 결국 모든 인간은 죽고 말았다.

인간에게 있어서 이 극복할 없는 한계상황으로서의 죽음은 과연 어떤 것인가?

성경은 인간의 죽음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을 분리’(separation)의 개념으로 말하고 있다 성경은 세 가지의 상태를 말한다.

즉 육체적 죽음(physical death)과 영적 죽음(spiritual death), 그리고 영원적 죽음(eternal death)이다. 여기서 육체적 죽음이란

인간의 영혼과 육체의 분리이며, 영적인 죽음은 하나님과 인간 영혼의 분리이고, 영원적 죽음, 곧 지옥의 둘째 사망은 영과

육이 함께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되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인간에게 있어서 육체적 죽음이란 심장의 활동으로서의

맥박이 정지되고, 폐의 활동으로서의 호흡이 정지되는 것을 말한다.

 

-성경이 제시하는 육체적 죽음에 대한 세 가지의 원칙

첫째:  성경은 육체적 죽음을 영혼의 죽음과 구별해서 말하고 있다(10:28, 12:4). 비록 살아 있는 자라 할지라도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불신자는 이미 죽은 자로 간주하였던 것이다.

둘째:  성경은 육체적 죽음을 동물적 생명의 종결이나 상실로 언급하고 있다(6:9, 12:25). 육체적 죽음이 그가 육신을

         입고 있을 때 맺었던 여러 가지 육체적 관계로부터의 격리만을 의미할 뿐 존재의 종말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셋째:  성경은 육체적 죽음을 육체와 영혼의 분리라고 가르쳐 주고 있다(12:7, 2:26). 이것은 영과 육이 각각의 본향인

         하늘과 땅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육체적 죽음이란 영혼과 육신의 분리로 말미암은 육체적 생명의 종결임과 동시에 이는 또한 새로운 형태의

삶으로의 전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 성경적 죽음은 존재의 종결이 아니라(not a cessation of existence)

생의 자연적 관계들이 분리되는 것(severance of the natural relations of life)을 의미하는 것이다.

 

2.죄와 죽음과의 관계(The Connection Between Sin and Death)

성경에서 말하는 육체적 죽음은 결코 멸절(annihilation)이 아니라, 육체와 영혼의 분리(separation)에 의한 육체적 생명의

종결인 것이다. 성경은 죽음이 죄의 결과요, 죄의 형벌이라고 가르쳐 준다(2:17, 3:19, 5:12, 6:23). 죽음은 인간생활에

있어서 자연적 과정이라고 보기보다는 인간의 마음에 공포와 두려움을 가져다주는 신적 진노의 표현(90:7, 11)이며,

하나의 심판(1:32)이고, 정죄(5:16)이며, 저주(3:13)이다. 이와 같이 인류에게 죽음이 찾아 온 것은 인간의 범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내리신 형벌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보통은혜(common grace)로써 죄와 죽음의 활동을

억제하셨으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의 특별은혜(special grace)로써 이 적대적 세력들을 정복하셨다

(5:17, 고전 15:45, 딤후 1:10) (히 2:14, 1:18, 20:14). 그래서 죽음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제공된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을 거절하는 자들에게만 공포와 두려움 속에 주어지는 형벌이 되는 것이다.

 

3. 신자의 죽음과 의의(The Significance of the Believers)

인간에게 있어서 죽음은 이처럼 죄에 대한 결과로서의 형벌인 것이다. 그런데 信者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책에서

구속 받았다고 한다면, 왜 신자들이 아직도 죽어야 하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즉 이미 그 모든 정죄로부터 벗어난 신자가

(8:1) 범죄로 인한 형벌의 일종인 육체적 죽음을 경험한다는 것은 하나의 모순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물론 신자의 죽음이

모든 존재와 생의 끝이라면 분명 모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자의 죽음은 인격적, 존재적 동일성과 연속성을

유지하며 전혀 다른 차원의 삶을 시작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며 신자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더욱 복된 삶의 출발점이 되므로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죽음이 신자들에게는 형벌이 아니라 성화의 과정의 중요한 요소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죽음은 신자에게 있어서 영혼의 성화의 완성(12:23, 21:27)과 완전한 생의 시작을 뜻하며,

천국에 들어가는 확신(고전 15:55)과 함께 영원한 부활의 소망(8:11, 살전 4:16-17)을 제공하므로 신자는 죽음을

두려움이 아닌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도와줘

제2장 영혼의 불멸(IMMORTALITY)

 

 1. 용어의 의미(The Meaning of Terms)

역사적으로 볼 때 영혼불멸의 사상은 기독교에만 나타나는 특별한 고유개념이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영혼의 불멸(immortality)

한마디로 인간의 영혼이 죽음과 함께 소멸되지 않고 영원토록 그 독립적 실존이 보존된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하면 육신적 죽음과 함께 흙으로 빚어진 육체는 해체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혼만은 그 해체에 참여하지 아니하고

개별적 실존으로서의 그 본질을 보존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보존된 육체는 또 다른 부패와 죽음의 씨를 전혀 지니고

있지 않은 채 그의 신앙 여부에 따라 영생이나 영벌에 처해지게 된다는 것이다영혼의 불멸은 인간의 영혼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할 때까지 거하게 되는 중간상태에 대한 교리와 부활, 심판, 그리고 영생과 영원한 형벌에 대한 교리의 근원이 되는 동시에

그 모든 교리들을 떠받치고 있는 근본교리가 된다.

 

한편 이러한 영혼의 영원성은 하나님의 영원하고 불멸하신 속성에 기인한 것으로서, 그의 본래적이고 영원적이며 필연적인

속성이 인간에게 반영됨으로 가능해진 것이다. 그러나 본래 不滅이라는 용어는 오직 하나님께만 적용되는

단어이므로(딤전 6:16), 하나님의 본질적 속성인 초유적 불멸과 인생의 영혼이 지니고 있는 영원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즉 그것은 인간의 영혼이 지닌 불멸이 하나님의 의지에 따라 변화되며 시작이 있는 영원이고 하나님께로부터 수여

받은 영원임에 반하여, 하나님께서 소유하고 계신 초유적 불멸은 모든 시간적 제한을 초월한 것으로 영원 전부터 스스로

소유하고 계신 것으로서, 절대로 외부의 어떠한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는 완전한 영원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영혼불멸이 하나님이 아닌 피조물에게 사용될 때는 두 가지의 의미를 갖는다. 즉 믿는 자의 경우에는 하나님과 더불어서

축복된 상태를 누리는 것을 영생’(eternal life)이라고 한다. 또한 마귀나 악인들의 경우에도 죽지 않고 영원한 고통을 당하므로

영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악인들의 경우는 영생이라고 하지 않고 영벌’(eternal punishment)이라고 부른다.

2. 성경적 증거(Scripture Proof) 

성경은 불멸에 대한 개념을 하나님에 대해서만 적용한다. 물론 인간에 대해서도 영혼의 불멸에 대해 여러 가지 형태로

서술하고 있으나 명확하게 기술된 곳은 없다. 하지만 인간 영혼의 불멸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성경의 여러 곳에

그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영혼불멸의 개념

첫째: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에서 찾아볼 수 있다(1:28, 2:5, 19-20).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 생기를 불어넣으시어 생명을 주셨다. 이 생명은 가사적(可死的)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생명이었다.

둘째: 인간의 죽음을 하나님으로부터의 궁극적 분리가 아니라 다른 세상으로 가는 것이라고 묘사한다(5:24, 삼상2:6)

        구약성경서 죽은 자는 스올(sheol)이라는 곳으로 내려간다고 한다. 이곳은 모든 죽은 자들이 거하는 영원하고

        비도덕적인 곳으로 묘사된다

셋째: 죽음 후 하나님과의 교제에 대한 증거와 죽은 자의 부활에 관한 교훈 에서 찾아볼 수 있다(19:25-27, 16:9-11,

        시17:15, 49:15, 26:10-19, 12:2). 이 구절들 속에는 죽음 후 하나님과 교제하며 누릴 신자의 축복뿐만 아니라 ,

        의인들의 하나님과의 교제는 죽음에 의해 파괴당할 수 없다는 신앙을 보여준다.

 

- 신약성경의 영혼불멸의 개념에 대한 증거

첫째: 사후 영혼의 존속에 대한 증거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10:28, 11:21-24, 24:43, 11:25,14:3, 2:5-11,고후 5:1,10)

        인간의 영혼은 선악간 구별없이 사후에도 존재한다고 가르친다.

둘째:  육체의 부활에 대한 증거에서 찾아볼 수 있다(20:35-36, 5:25-29, 고전 15:, 살전 4:6, 3:21).육체의 부활이

         신자에게는 불멸성의 완전한 축복의 삶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지만, 악인에게는 영원한 형벌로 들어가게 된다.

셋째:  사후 신자의 행복한 삶에 대한 증거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13:43, 25:34, 2:7, 10, 고전 15:49, 3:21, 딤후 4:8,

         21:4, 22: 3-4). 신자들은 이 세상에서 시작된 축복의 삶이 죽은 후에는 더 완전하게 결실되어 하나님과 교통하는

         완전한 무흠의 삶, 즉 최상의 행복한 삶으로서의 영생의 복락상태로 들어간다...아멘~

 

 

흥5

           3장 중간상태(THE INTERMEDIATE STATE)

 

1. 중간상태의 개념(Idea of Intermediate State)

중간상태란 영혼이 육신의 사망과 부활 사이에서 존재하는 상태 또는 정황을 말한다.즉 인간이 이 땅에서 살다가 죽으면

부활의 때, 곧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까지 그 영혼이 어디에서 어떤 상태로 존재하고 있느냐 하는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중간상태를 말할 때는 사후 영혼의 존재 양식과 거하는 처소, 즉 장소에 대한 문제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성경은 사실 중간상태에 대해서 거의 침묵을 지키고 있으며, 이와 관련된 언급도 육체의 부활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즉 인간의 미래에 관한 종말론적 메시지에 연관되어 부차적으로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 더욱이 죽음과 부활 사이에

불경건한 자들의 상황이 어떠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거의 말하고 있지 않다. 이것은 중간상태가 영원으로 이어지는

최종적 상태가 아니라 말 그대로 일시적인 상태이기 때문이며, 나아가 성경의 주된 관심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다가올

새 시대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 성경은 신자의 영혼이 몸에서 분리되어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된다는 교훈은 비교적 많은 곳에서 뒷받침 해주고

있다(23:43, 16:19-31, 고후 5:1, 8, 12:3-4, 1:23, 살전 5:10, 14:13). 따라서 교회는 이러한 성경적 증거에 근거하여

신자의 영혼은 죽음 직후에 하늘나라의 영광으로 들어가고 악인의 영혼은 죽어서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된다고 가르쳐 왔다.

특히 개혁파 교회는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321항을 통해 중간상태에 대한 개념을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인간의 육체는 사후에 흙으로 돌아가 썩게 되나 영혼은 불멸적인 본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즉시 돌아간다. 의인의 영혼은 죽는 순간에 거룩함으로 완전케 되어 지극히 높은 천국에 들어가 거기서 빛과 영광 가운데

하나님의 얼굴을 뵈오며 육신의 완전한 구속을 기다린다. 그러나 사악한 자의 영혼은 지옥에 던지어져 거기서

고통과 칠흑 같은 어두움 속에서 지내며 마지막 날의 심판을 기다린다. 성경은 육신이 죽은 후에 갈 곳으로

이 두 장소(천국과 지옥) 외에는 아무 곳도 가르쳐 주지 않고 있다.

 

2. 음부에 대한 현대적 의미(The Modern Meaning of Sheol-Hades)

중간상태에 대한 이 개념은 현대에 상당히 성행되는 개념으로서, 경건한 자나 악한 자나 누구든지 죽은 후에는 구약에서

스올(sheol)이라고 부르며, 신약에서는 하데스(hades)라고 부르는 중간지대에 내려간다는 것이다. 그곳은 보상이나 형벌의

장소가 아니라 모든 자의 동일한 운명의 장소이며, 지상생활의 약화된 반영에 불과한 음침한 장소이며, 생활의 흥미를 잃고

삶의 희열이 슬픔으로 변해 가는 약화된 인식과 침체된 무능력의 장소라고 한다.그러나 이런 개념은 거의 성경적 이론과

일치하지 않는다. 성경에서 스올(sheol)과 하데스(hades)란 말은 항상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지 않았지만 가끔 무덤(42:38, 16:10)으로, 어떤 때는 죽음의 상태나 조건(삼상 2:6, 89:48)으로, 또 어떤 때는 영원한 형벌의 장소(32:22, 9:17, 9:18)로 의미되었다. 그러므로 스올과 하데스는 어떤 장소적 개념이 아닌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며 성경에서 스올과 하데스가 악인이 내려가는 장소(21:13, 9:17, 5:5, 7:27, 9:18, 15:24, 23:14) 또는 의인이

내려가는 장소(14:13-14, 17:13-14, 89:48) 등의 구절은 인생 모두가 죽음에 처하게 됨을 뜻하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3. 로마 카톨릭파의 중간상태(The Intermediate State in Roman Catholic)

-천국(Heaven)

천국은 당연히 사후에 일단 육체와 분리된 영혼이 들어갈 수 있는 가장 좋은 처소이다. 그러나 이러한 천국이 오직 믿음만으로

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즉 천국은 무엇보다 먼저 영세(領洗/ baptism)를 받고 카톨릭 교회의 정식 교인이 된 자인 것은 물론

그리스도인으로서 많은 선행과 공로까지 쌓은 일정한 신자들의 영혼만이 죽은 후 즉시 들어갈 수 있는 최고의 처소로 이해한다.

 

-지옥(Hell)

지옥은 당연히 사후에 영혼이 들어갈 수 있는 가장 나쁜 처소이다지옥은 영세를 받지 못함으로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맛보지 못한 모든 성인(成人)이나 비록 영세는 받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율법과 교회의 법을 의도적으로 침해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사죄의 은혜에서 떠남으로 죄 사함을 받을 수 없는 치명적인 죄를 범한 자들의 영혼이 죽은 후 들어가야 하는 곳이다.

 

-연옥(Purgatory)

연옥은 비록 영세를 받아 카톨릭 교회의 일원은 되었으나 선행과 공로가 부족하여 천국에 이르지 못하는 자,

그러면서도 영세의 은혜를 완전히 상실하지는 않았으며 지상의 교회와의 화목관계도 깨어지지 않은 자들이 들어가는 곳이다.

이곳은 형벌의 장소라기보다는 영혼들이 완전히 깨끗하여져서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축복으로 들어가도록 연단 받으며

준비하는 장소라고 한다

 

이곳은 완전히 정화되지 못한 자의 영혼이 머무는 곳이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에는 하나님의 복된 모습을 보는 은혜,

곧 견신의 은혜 또는 축복으로부터 제외되며 이로 인해 영혼의 고뇌와 실제적인 고통을 받게 된다

이곳에 거하는 영혼들이 겪는 고통의 강도나 기간은 아직 얼마나 더 정화될 필요가 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거기 거하는 기간은 개인의 형편에 따라 다른데, 현세에 살고 있는 경건한 신자와 친척의 기도, 선행, 미사 등에 의해

단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마지막 심판 때까지 머물러야 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 교리는 성경적인 근거가 없다.

 

-선조림보(Limbus Patrum)

림보란 라틴어로 변두리또는 가장자리라는 뜻의 림부스’(limbus)에서 온 말로써, 중세시대에 지옥의 주변 혹은 가장자리에

있는 두 장소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후부터 부활하실 사이에 오셔서 해방시켜 줄 때까지 구약 성도들이

억류되었던 곳이며,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신 이후에 선조들의 거처로 내려가셔서 그들을 잠정적인 구금에서 풀어주시고

승리하셔서 그들을 천국으로 데려가셨다고 한다. 이것이 로마 카톨릭파가 (벧전 3:19-20)을 근거로 말하는 그리스도의

지옥강하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다.

 

-유아림보 (Limbus Infantum)

유아림보는 영세를 받지 못한 모든 아이들의 영혼이 거하는 처소라 한다. 즉 로마 카톨릭 교회에 의하면 불신자의 자녀든

신자의 자녀든 영세를 받지 못하고 죽은 유아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3:5). 이곳에서 유아들이 어떤 상태로

지낼 것인가에 대하여는 의견이 통일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지배적인 견해는 그들이 적극적 형벌을 당하지는 않지만

천국의 축복에서 제외되고, 아무런 구원의 소망이 없이 거기에 거한다는 것이다. 즉 그들은 감각적인 고통은 받지 않는 상태로

지내게 된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기들의 자연적인 능력들을 사용하여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므로 자연적인 행복을

충분히 누린다고 한다. 하지만 이 견해 역시 성경적 근거가 없다.

 

 

한성기 목사님께서 자료 제공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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