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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백두산 2015년

♧ 연변 대성중학교와 용정시~

by 은빛드보라(Deborah) 2015. 9. 10.

               4 day

               9월2일(수) 2015년

                            이동지역: 연길- 용정-도문-목단강

 

                         07:50  호텔을 출발한 우리 일행은 용정시로 가고 있다               

                                     

 


용정의 대성중학교로 가는 길의 연립주택들

                       

 

전용버스가 달리는 방향의 왼편에 있는 세전이벌

오른쪽 방향으로는 평강이벌이라는 이름의 들판이라고 가이드가 설명해줬다.

백두산 여행길의 농촌 풍경은 거의 비슷한데

옥수수밭, 뱌농사 짓는 논, 양파밭. 전신주가 있고 

그리고 사진과는 달리 허름한 농가주택들이 있는 풍경들이다

 

용정시는 연변자치주의 수도는 아니지만 한국사람의 비율이 가장 높은곳이다.

용정시가 있는 만주는 워래 우리나라 땅인데 조선과 청나라의 국경협약에 의해서

국경이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정해 졌었다.

구한말 일제의 박해를 피해 반도의 이주민들이 이곳으로 모인 것이 도시형성의 시초이며

훗날 일제의 강제 이주가 이루어진 곳이다.

 

 

해란강

달리는 차창으로 찍은 사진인데 많이 흔들리지 않아 다행이지만

뒷편의 다리도 좀 보이게 구도를 잡지 못해 아쉽다.

 

 

해란강은 두만강의 지류로서 가곡 '선구자'에 언급된 강으로

길림성 조선족자치주를 흐르는 강이다.

이 강이 선구자에 언급된 이유는 우리 민족이 간도 지방에 처음 자리를 잡은 곳은

해란강 주변의 들판이었고 그 중심 젖줄이 해란강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성중학교

일제치하에서 민족지도자의 양성소와도 같은 곳으로

당시 만주 지역에 세워졌던 여러개의 학교가 통합되어 대성중학교가 세워졌다.

1920년에 개교한 은진중학교,명신여자중학교(1920년),영신중학교(1921년), 대성중학교(1921년)

광명여자중학교(1926년)인데 이들 학교가 통폐합 되면서 오늘날의 용정중학교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많은 민족지도자를 키워낸 용정중학교...

이 학교 출신 중엔 이준열사, 이상준,이위종등의 헤이그 밀사와 문익환목사가 있다.

앗 !!!

우리의 위대한 깅일성 수령 동지를 빼먹을 뻔했네..

 

우리 일행은 비수기의 아침 이른 시간에 도착해서 관광버스가 두어대 밖에 없었으나

성수기엔 관광버스가 문전성시를 이루는 유명한 관광지라고한다

 

 

 

윤동주 시비

"죽는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데 주어진 길을 걸어 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학창시절엔 이 시를 외우면서 가슴 한켠이 저려오고 눈물이 났었는데

환갑 진갑 다 지난 지금은 그냥 간결한 문체로 잘씌여진 시라는 느낌 밖엔 없으니....

윤동주 시인은 용정중학교의 전신인 은진중학교 출신이라고 한다 .

 

 

 마침 아침 체조 시간이어서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체조를하고나서 행진을 하고 있다.

 

 

 용정중학교는 옛 대성중학교 건물을 박물관으로 쓰고 있다.

2층의 기념 전시관에서 여드름 자국이 잔뜩 있는 여선생님의 안내를 받아서 전시관을 관람했다.  

기념관의 1층엔 학교상점(기념품 판매점)이 있고 이곳의 판매수익은 장학금으로 사용되며

방명록을 기록하고 학교 발전 기금을 기부하는 함도 있다.

 

 

어젯밤 유경식당에 부채 놓고 와서 안절부절 하던중

이게 맘에 들어서 샀다.

40위안 한국돈 8,000원

부채 없이는 못살아 ~ 은빛드보라 혼자서는 못살아~

 

 

 

      중국연변 용정중학 참관기념

      기념 스템프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는

      20위안 한국돈 4,000원이다

 


 

 

 

 

 

                                  

 

백두산 관광와서

그늘 밑에서 쉬는 노인들~~ 

 

 

박창호씨 부부는 어제밤에 배탈이 나서 밤새 고생했고

오늘 관광 일정을 소화 하는데 힘들어 하셨다.

 

다른부부는 부부 중 한명만 배탈이 났는데

잉꼬 부부같은 박창호씨 부부는 천생연분인지라 배탈 설사도 똑 같이 하고는(ㅋㅋ)

얼굴색이도 안좋아 몹시 걱정이 되었다.

 

 

 

 

 

용정시내 번화가 풍경

 

 

이 점심이 옵션 30$인 송이버섯구이 정식

물론 우리가 지불한 점심 식대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는데

별도의 언급도 없었다.

 

송이버섯은 참기름과 소금을 섞은 기름장에 찍어 먹으니 향도 좋고 맛도 짱이었다.

돼지고기 삼겹살은 4인 식탁에 5~6쪽 밖에 안줘서 양이 너무 작았다.

밑반찬도 그저 그렇고 ....

 

중국의 닭고기 자체는 우리나라에서 먹던것 보다 쫄깃하고 맛있었으나

다만 그게 갖은 양념을 넣은 칼칼한 맛의 닭볶음탕 이나,

 기름에 튀긴 치킨 그런게 아니라... 그냥, 백숙(찜)으로 나온다.

 

다음 돼지고기를 분석해 보자!

돼지고기도 수육이 좀 자잘하게 썰어져서 나오는데 아무런 양념을 안해도

돼지냄새 안나고 특히 비게가 고소한게 맛나다.ㅋㅋㅋ

감자조림이나 양념 두부,오이무침 이런것 보다는 그래도 남의 살(肉)이 낫던데요....

 

 

 

 

식당 앞 화단에 핀 꽃 

꽃 색깔이 은빛드보라가 일평생 동안 줄기차게 좋아하고 있는 진달래색이다.

 

 

용정시내 식당 간판이 멋지다

국밥을 먹으면 기쁨을 느끼나보다 "환희"

 

일송정

간도라고 부르는 만주땅의 일송정을 멀리 차창밖으로 조망 하였다.

일송정은 원래 푸른소나무 한그루를 말한것이나 지금은 최근에 세워진 정자를 일송정이라 한다.

일제시대 때 우리민족 지도자들이 이 비암산  일송정 그늘 밑에서 조국의 앞날을 서로 의논하곤 했었는데

일제가 이 모임을 강제해산 하고 비암산 주변을 군사 훈련지도로 지정하여

일송정을 사격목표로 삼았다고 한다

1938년 조선의 정기를 끊는다면서 일송정에 약물을 투여해서 고사시키고 말았고

지금  보이는 일송정은 1991년 심은 어린 소나무이다

 

선구자에 나오는 용두레 우물이 진짜 있다는데 보지 못했고 

점심 식사후 우리 일행은 도문으로 이동 하였고 13:55 도문에 도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