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강 -11월 11일(월) 20:00. 2013년
7. 은혜의 수단(88문~107문)
1) 말씀(88~90문)
2) 성례(91~97문)
3) 기도(88~99문)
4) 주기도문(100~107문)
1) 말씀(88~90문) 88~89문:말씀의 효력
문 88.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구원의 유익을 전하시려고 나타내시는 보통 방법이 무엇입니까?
답.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구원의 유익을 전하시려고 나타내시는 보통 방법은 그의 규례인데,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과 성례와 기도이다. 이 모든 것이 택하신 자들이 구원을 얻는데 효력이 된다.
1) 성경말씀 (딤후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2) 성례 (마 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하시니라.(눅22:15, 요 6:53~57)
3) 기도 (눅11:13) 너희가 악할 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 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행 2:41~42)
문 89.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효력이 되어 구원을 얻게 됩니까?
답. 하나님의 영이 말씀의 낭독, 특히 설교를 효력 있는 방도로 사용하시어 죄인을 반성시켜 회개케 하시며또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룩함과 위로를 더하셔서 구원에 이르게 하십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을 읽음으로 (요 5:39, 17:3)
2) 설교함으로 (행 10:44)
3) 반성하여 회개함으로 (행 2:37, 약 1:23)
4) 성경 말씀을 믿음으로 (롬 1:16, 딤후 3:15)
문 90.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읽고 들어야 그것이 구원을 위하여 효력 있게 됩니까? - 말씀을 배우는 방법
답.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로 하여금 구원을 얻게 하는 방도가 되려면, 우리는 마땅히 부지런함과, 예비함과, 기도함으로써 나아가야 하며, 믿음과 사랑으로 그 말씀을 받아들여 우리 마음에 새기며 우리의 생활에서 이를 실천해야 합니다
1) 부지런히 읽고 (딤전 4:13)
2) 기도하며 생각하고 (시 119:148)
3) 사랑으로 마음에 두며 (시 119:11, 사 66:2)
4) 행실에 나타낼 것 (약 1:21~22)
<말씀의 두 부분(The Two Parts of the Word)>은혜의 수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의미는 인격적 말씀, 곧 로고스가 아니고(요 1:1),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권능의 말씀(시 33:9)과 선지자들이 받은 직접 계시의 말씀도 아니다(렘 1:4, 호 1:1). 이것은 하나님의 영감 된 말씀, 곧 성경의 말씀(딤후 3:16)으로서, 이 말씀이 다양한 방법으로 전파되는 것을 말한다. 즉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선포되는 설교로서 뿐만이 아니라 말씀을 가정에서 읽거나, 학교에서 가르치거나, 혹은 문학이나 문화와 함께 소개되는 것에 의해 은혜의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의 말씀의 전파는 성령의 초자연적인 역사를 통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에 권능을 나타내게 된다. 이러한 은혜의 수단으로써의 하나님의 말씀은 율법과 복음이라는 두 가지 구성요소에 의해 이루어졌다.
1) 율법(Law) 율법은 죄를 억제하고 의를 증진시키는 목적을 돕는다. 즉 율법은 인간에게 죄의 상태를 알려 죄인인 인간이 복음 앞에 무릎을 꿇게 하는 것이 그 목적이요 역할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율법의 사역은 복음사역의 예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목적을 가진 율법은 그 기능에 있어서 삼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먼저 율법은 인간의 마음속에 죄를 상기시킴으로써 회개케 하고 의를 증진시키는 것에 의해 세계에서 하나님의 보통 은혜의 목적을 달성한다. 또한 율법은 인간에게 죄에 대한 확신을 심어줌으로써, 자신이 율법의 요구를 시행할 능력이 없음을 깨닫게 하여 인간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tutor)의 역할을 한다. 나아가서 율법은 신자들의 삶의 규범으로써 신자들에게 의무를 확인시켜 주고 생명과 구원의 길로 인도한다. 아멘~
2) 복음(Gospel)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구원의 믿음을 일깨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율법은 복음을 믿을 것을 요구하지만, 복음은 인간의 생활에서 율법의 완성을 목적하는 것이다. 즉 율법은 구약의 약속과 관련하여 구원의 길이 되시는 오실 구세주를 지시할 따름이지만,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구원의 길에 대한 명백한 표시인 것이다. 이와 같이 복음은 죄인으로 하여금 그리스도에게 와서 믿고 회개할 것을 권고하며, 진실하게 믿고 회개하는 자들에게 현재와 미래에 있어서의 모든 축복들을 약속한다. 또한 복음은 믿는 모든 자를 위한 구원에 이르는 하나님의 능력이다(롬 1:16, 고전 1:18). 이처럼 은혜의 수단으로써의 말씀은 죄를 자각케 하며(롬 3:20),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목적인 율법과(갈 3:24), 믿는 모든 자에게 구원의 능력이 되는 복음(롬 1:16, 고전 1:18)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은혜의 수단이 되지만, 이 경우 말씀만으로는 신앙과 회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하지 못하며, 성령도 통상적으로는 말씀과 분리하여 역사하지 않기 때문에 구속 사역에서 말씀은 성령과 함께 역사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성령은 말씀을 그 기구로 사용하신다는 것이다. 따라서 말씀의 전파는 성령에 의해서 그 효력이 가해지지 않으면 충분한 결실을 맺을 수 없다는 것이다.
2) 성례(91~97문) 91~95문 : 세례
문 91. 성례가 어떻게 효력이 되어 구원 얻는 방도가 됩니까?
답. 성례가 효력이 되어 구원을 얻게 하는 방도가 되는 것은 성례 자체로 말미암음도 아니고, 성례를 베푸는 자의 덕으로 됨도 아니며, 다만 그리스도의 축복함으로 되며, 또 믿음으로 성례를 받는 자 속에 성령의 역사함으로 되는 것입니다.
1) 그리스도의 축복으로 되고 (고전 3:6~7, 6:11, 12:13, 마 3:11)
2) 받는 자 속에 성령의 역사로 된다(벧전 3:21)
< 말씀과 성례와의 관계(Relation Between the Word and the Sacraments) > 하나님의 말씀은 은혜의 한 방편으로 완전하다. 그러나 성례는 말씀을 떠나서는 완전하지 못하다. 이 말은 로마 가톨릭파와반대되는 견해인데, 그들은 성례가 구원에 필요한 전부라고 가르친다. 물론 성례는 인간에게 특별한 도움을 준다. 그것은 성례가 청각보다 더 예민한 시각에 호소하므로 인상을 깊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즉 말씀은 귀에 적용되고 성례는 눈에 적용된다. 말씀으로 귀에 전해진 진리는 상징적으로 성례로 눈에 제시된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말씀은 성례 없이도 존재할 수 있고 완성되기도 하지만 성례는 결코 말씀 없이는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말씀과 성례의 관계에는 유사점과 차이점이 있다.
- 말씀과 성례의 유사점
첫째로 창시자에 있어서 말씀과 성례는 하나님이 창시자이시다.
둘째로 내용에 있어서 말씀과 성례의 중심적 내용은 그리스도이시다.
셋째로 내용이 전유되는 방식에 있어서 말씀과 성례는 믿음으로만 충용 된다.
-말씀과 성례의 차이점
첫째로 필요성에 있어서 말씀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인데 반하여 성례는 그렇지 않다.
둘째로 목적에 있어서 말씀은 믿음을 일으키며 믿음을 강하게 하나 성례는 믿음을 강하게만 한다.
셋째로 범위에 있어서 말씀은 전 세계를 대상 한 것인데 반해 성례는 신자들과 그들의 후손들을 위해서만 시행되는 것이다.
문 92. 성례란 무엇입니까?
답. 성례는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거룩한 예식인데, 이 예식에서 그리스도와 새 언약의 유익을 깨닫는 표로서 표시하여 인쳐 신자들에게 적용하는 것입니다.
1)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것(마 26:26~28, 28:19, 눅22:15)
2) 신자에게 인친 표 (눅22:20, 롬 4:11)
< 성례의 필요성(The Necessity of the Sacraments) >
성례는 은혜의 방편이지 구원의 표적은 아니다(롬 2:28-29, 벧전 3:21). 성례가 구원과의 관계에 있어서 유효적 수단이 되는 것은 그 자체의 어떤 내재적 능력이나 마술적 힘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 효력의 근거는 오직 그것을 제정하신 주님의 역사를 믿는 믿음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 파는 주장하기를 세례는 구원을 얻게 될 모든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한다. 그리고 고해성사는 세례 받은 후에 치명적인 죄를 범한 자들에게 동등으로 필요하며, 견신례, 성찬례, 종유례 등은 시행의 명령이 내리거나 두드러지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될 때에만 필요하다고 한다.
한편 프로테스탄트는 가르치기를, 성례는 구원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다만 신적 교훈의 견지에서 의무적인 것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성례를 고의적으로 행하지 않고 무시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영혼의 빈곤을 가져오게 되며, 또한 하나님께 대해서도 고의적이고 완강한 불순종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93. 신약의 성례란 무엇입니까?
답. 신약의 성례는 세례와 성찬입니다.
1) 세례 (마 28:19~20)
2) 성찬 (막 14:25, 행 10:47~48)
<구약 성례와 신약 성례와의 비교(The Old and New Testament Sacraments compared)>
구약의 성례와 신약의 성례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즉 구약의 성례는 단순한 예표에 불과하므로 받는 자의 법적 위치에만 영향을 주고, 받는 자의 영적 상태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며, 받는 자의 신앙에 의해 영향이 좌우된다고 본다. 이에 비해 신약 성례는 받는 자의 영적 상태와는 관계없이 다만 성례 행위에 의해서 받는 자의 심령에 영적 은혜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실 구약의 성례와 신약의 성례 사이에는 본질 상의 차이는 없다(롬 4:11, 고전 5:7, 10:1-4, 골 2:11).
그러나 동시에 여기에는 그 나타나는 의미에 따라 다음과 같은 차이점이 있다. 첫째로 구약의 성례에는 영적 의미 외에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적 측면이 있으나 신약의 성례는 전 세계적이며 보편적이다. 둘째로 구약의 성례는 제사나 결례 같은 많은 상징적 의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신약의 성례는 절대적으로 단독적이다. 셋째로 구약의 성례들은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장차 효과가 나타날 은혜의 인호(seals of grace)였으나, 신약의 성례는 그리스도와 그의 완성된 구속의 제사(희생)를 회고하는 것이다. 넷째로 구약의 성례들은 신약의 성례처럼 풍부한 영적 은혜의 양(量)을 받는 자에게 전하지 못하였다.
<성례의 수(The Number of the Sacraments)>구약시대에는 ‘할례’(circumcision)와 ‘유월절’(passover)이라는 두 개의 성례가 있었다. 할례는 피의 제사로서, 죄책과 죄의 오염을 제거하는 것을 상징하며,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원리를 삶의 전 영역에 적용시켜야 된다는 의무를 부과하는 것을 의미했다. 유월절도 역시 피의 성례였다. 유월절의 어린양을 통한 대속의 희생은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누룩 없는 떡을 먹는 것은 성찬 시 떡을 떼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이 두 예식은 모두 구약의 제사 제도와 조화되는 유혈 성례(流血聖禮)이었다
신약시대에도 또한 세례(baptism)와 성찬(Lord's supper)이라는 두 가지의 성례가 있다. 이 성례들은 신약시대 전체와 조화를 이루는 무혈 성례(無血聖禮)이다.신약의 성례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완전한 희생을 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 이후에는 더 이상 피 흘림이 필요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신약시대 성례에 대해 로마 가톨릭 파는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두 개의 성례 외에 견신례(堅信禮), 고해례(告解禮,) 안 수례(按手禮),등을 추가함으로 성례의 수를 확대시켰으나 이는 적합한 성례의 수라고 할 수 없다.
문 94. 세례가 무엇입니까?
답. 세례는 물을 가지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씻는 성례인데,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접붙임과, 은혜의 약속의 모든 유익에 참여함과, 주님의 사람이 되기로 약조함을 표시하여 확증하는 것입니다.
1) 삼위의 이름으로 씻는 예식 (마 28:19)
2) 그리스도께 접붙이는 것 (롬 6:3~4)
3) 모든 은혜에 참여하는 것 (계 1:5)
4) 주님의 사람 되는 약속의 표 (갈 3:26~27)
<세례의 제도(The Institution of Christian Baptism)>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신 후, 곧 속죄의 사역을 완성하신 후 세례를 제정하셨다. 그는 그의 충만하신 중보적 권위로 세례를 제정하시고, 다음에 오는 모든 시대로 하여금 그것을 의무적으로 지키게 하셨다. 성경은 이러한 사실에 대해 마 28:19에서 증언하기를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라고 했다. 이처럼 세례는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제도로서 참된 신앙을 고백하는 것을 조건으로 행하는 거룩한 의식이다. 이러한 세례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살아남을 상징하고 그 은혜를 베푸는 것이요, 우리의 죄를 씻으심을 상징하고 인치는 것이다. 또한 세례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가입하는 외적인 표요,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교제에 참여하는 표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려는 사람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그리스도와의 새로운 관계에 들어가는 표(sign)로 세례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문 95. 어떤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어야 합니까?
답. 세례는 불신자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고백하며 그에게 복종하는 데까지 이르러야 세례를 베풀 것이며,또 입교한 자의 자녀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1)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자 (행 2:38, 41, 행 8:36~37,)
2) 그의 자녀(행 2:38~39, 고전 7:14, 갈 3:17~18, 29)
<세례 받을 사람들(The Proper Subjects of Baptism)> 1) 성인 세례(Adult Baptism) 세례는 적절한 자격을 갖춘 신자들과 그들의 자녀들에게 베풀도록 되어 있다. 성인 세례의 경우에는 무엇보다 신앙고백이 선행되어야 한다. 예수께서는 분명히 세례 제정의 말씀을 주로 성인 세례를 심중에 두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왜냐하면 제자들이 그들의 선교사업을 성인들에게서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수님의 교훈은 신앙고백이 세례보다 앞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막 16:16). 오순절에 베드로를 통해 말씀을 받아들인 자들은 세례를 받았다. 빌립보의 간수의 경우에도 세례는 신앙고백 후에 있었다(행 2:41, 8:37, 16:31-34). 그러므로 교회는 성인에게 세례를 베풀기 전에 신앙고백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때 고백의 진실성에 아무런 이유가 없으면 그 표면적 가치에 의해 받아들이게 된다. 따라서 고백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고백을 하는 자에게 있는 것이다. 아멘~
2) 유아세례(Infant Baptism) 유아세례에 대해서는 교파 간의 견해 차이가 있으나 개혁파 교회에서는 믿는 부모들의 유아들은 그들이 언약의 자녀요, 하나님의 전 포괄적인 언약의 후손들이라는 사실에 근거하여 유아세례를 베푼다. 침례교회는 유아세례의 정당성을 부인하는데 그 이유는 유아들이 믿음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며, 신약에 유아에게 세례를 주라는 명령이 없고 그런 세례의 단순한 예를 기록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유아세례가 비성경적이라는 증거는 되지 못한다. 물론 성경에는 유아들에게 세례를 주었다는 명시적인 기록이 나타나 있지는 않다. 그러나 유아세례는 성경의 단일한 구절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성경적 사상의 산물이다. 일찍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그것이 국가적 국면이긴 했지만, 주로 영적인 언약이었다(롬 4:16-18, 갈 3:8, 9, 14). 그래서 구약시대 유아들은 이 언약의 혜택에 참여하였으며, 할례의 표를 받았고, 이스라엘 회중의 한 부분으로 계산되었다(대하 20:13, 욜 2:16). 이러한 언약은 아직도 유효하며, 본질상 현시대의 새 언약과 동일한 것이다(롬 4:13-18, 갈 3:15-18, 히 6:13-18). 따라서 할례는 신약에 와서 언약에 들어가는 표와 증표로써 세례와 대치된다(행 2:39, 골 2:11-12). 새 언약은 옛 언약보다 은혜로운 것으로 성경(사 54:13, 렘 31:34, 히 8:11)에 나타나 있으므로, 새 언약은 유아를 좀처럼 배제하지 않는다. 이는 (마 19:14; 행 2:39, 고전 7:14) 등의 구절들의 견해와도 역시 다르다. 뿐만 아니라, 전 가족이 세례를 받았는데 이는 유아를 제외했다는 것이 아니다(행 16:15, 33, 고전 1:16). 이와 같이 언약적 약속은 유아세례의 확실한 객관적 근거를 제공해 준다.
그러나 유아세례가 어떻게 영적 생명을 강하게 하기 위한 은혜의 방편으로서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일어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답할 수가 있다. 즉 유아들이 세례 받을 때 중생되었다고 하면 세례는 그 시행 시에 중생의 생명을 강하게 하는 것이며, 세례의 의미가 보다 명백히 이해된 후에는 믿음이 더 견고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의 작용이 세례의 시행 순간에만 필연적으로 제한된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세례는 말씀처럼 믿음을 일으키는 수단은 아니나, 믿음을 강화시키는 것이며, 믿음은 모든 다른 신적인 은혜의 작용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따라서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세례 역시 은혜의 작용에도 크게 유익을 끼친다.
아멘~
<세례의 바른 양식과 시행자(The Proper Mode of Baptism and Administrators)>세례의 양식에 있어서 물로 씻는 의식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성령께서 우리에게 적용시키시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제거해 주시며 그야말로 씻어 주신 것을 외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며, 우리가 참으로 죄 용서함을 받았다는 것을 확실히 인쳐주시는 것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즉 세례의 상징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은 영적 성결, 혹은 정화(淨化)라는 것이다(행 2:38, 22:16, 롬 6:4, 고전 6:11 딛3:5, 히 10:22, 벧전 3:21, 계 1:5). 이러한 세례의 양식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로 침수(浸水/dipping)가 있다. 침수란 말 그대로 물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것을 말한다. 침례파에 의하면 이러한 침수가 세례의 본질적인 것이라고 한다.
둘째로 적수(滴水/sprinkling)가 있다. 적수란 물을 뿌리는 의식을 말한다. 이는 일반적으로 침례파를 제외한 교파에서 인정되고 있는 양식이다.
셋째로 관수 또는 주수(灌水, 注水/pour out or shed forth)가 있다. 이는 물을 붓는 의식으로서 그다지 보편화되지 않은 세례의 양식이다. 그러므로 세례의 양식에 있어서는 ‘침수’와 ‘적수’와 ‘주수’ 가운데 어느 특정 양식만이 바르다고 주장할 필요는 없다. 즉 세례의 양식은 물속에 잠기는 것을 통하여 시행될 수도 있고, 물을 뿌리는 것을 통하여 시행될 수도 있으며, 물을 붓는 것을 통하여 시행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세례는 그 의식이 지니고 있는 본질적인 의미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8장 3항에도 보면 “세례 받는 사람을 물속에 잠기게 할 필요가 없고, 세례는 그 사람 머리 위에 물을 붓거나뿌려서 베푸는 것이 옳다”고 했다. 예수께서도 세례의 어떤 형식을 제정하지 않으셨으며, 사용하신 세례(baptize)라는 말 역시 꼭 ‘담그다’란 뜻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씻어 정결케 하다’란 뜻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더욱이 성경은 단지 일반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씻음의 효력을 일으키는 행위를 지시하고 있을 뿐, 어디에서도 효력을 일으키는 특별한 양식을 지시한 적이 없다.
이와 같은 세례의 시행자 문제에 있어서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경우 세례는 ‘보이는 말씀’(visible Word)의 한 표현이므로 말씀의 선포와 마찬가지로 임직 받은 목사에 의해서 시행되는 것이 합법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파의 경우는 세례를 구원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으로 보므로 비상시에는 다른 사람들, 특히 조산원들도 세례를 줄 수 있도록 허락하고 있다. 그러나 세례는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 교회의 규례이기 때문에 합법적인 복음의 사역자에 의해 신자들이 모인 공적인 장소에서 시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문 96. 주의 성찬이 무엇입니까? -성찬
답. 성찬은 그리스도께서 정하신 대로 떡과 포도주를 주고받음으로 그의 죽음을 나타내 보이는 성례인데, 이를 합당하게 받는 자들은 육신적이거나 육욕적인 태도로 참여하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하여 그의 모든 혜택을 받아 신령한 양식을 먹고 은혜 가운데 자라가게 됩니다.
1) 그리스도께서 정하신 예식-떡과 포도즙 (눅22:15 , 고전 11:23)
2)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 (고전 11:25~26)
3) 육체와 정욕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님 (고전 11:27)
4) 믿음으로 몸과 피에 참여하는 것 (고전 11:28)
5) 은혜 중에 장성하는 효력 (요 6:55~56)
< 성찬의 제정(Institution of the Lord's Supper)>성찬은 주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그의 몸을 찢으시고 그의 피를 흘려주신 것을 표하는 교회의 거룩한 예식이다. 또 성찬의 잔은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 주께서 부어 주시고 흘려주신 피를, 그로써 새 언약을 세우신 언약의 피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찬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속죄 사역을 나타내고 상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성찬의 제정에 관하여는 공관복음(마 26:26-29, 막 14:22-25, 눅22:19-20)과 바울서신(고전 11:23-25)에 나와 있다. 이에 따르면 성찬은 예수께서 유월절 식사와 관련하여 제정하신 거룩한 예식이다. 공관복음서의 기록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교의 전통에 따라 만찬을 가지셨으며, 이 만찬은 저녁식사로 양고기와 떡과 감사와 축복의 잔이 포함된 기쁨의 식사였다(출 12장, 시 112-117편). 이렇게 전통적으로 준비된 유월절에 예수께서는 ‘나의 몸’과 ‘나의 피’라는요소를 첨가하여 유월절 식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성찬을 제정하신 것이다.
< 성찬의 상징과 날인(The Sign and Seal in the Lord's Supper)>성례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감각적이고 외면적인 상징(outward signs)에 의하여 행하여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례는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그 이상의 영적 진리를 표현한다. 특히 성찬에 있어서의 외면적인 상징에는 가시적인 요소들 뿐만 아니라 떡을 떼고 포도주를 마시므로 인해서 다음과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 첫째로 성찬은 주님의 죽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고전 11:26). 둘째로 성찬은 신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에게 참여하는 것을 상징이다. 셋째로 성찬은 영혼에 생명, 능력, 기쁨을 줌으로써 영적 식음의 효과가 있다. 넷째로 성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적 자체가 되는 신자들의 상호 연합을 상징한다. 뿐만 아니라 성찬은 이상과 같이 상징(sign)하는 것 외에도 이 상징이 의미하는 것의 실현을 위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seal)으로서 보증한다.
첫째로 성찬은 믿음으로 참여하는 신자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수치스럽고 비참한 죽음에서 자신을 내어 주셨다는 사실에 계시된 그리스도의 위대한 사랑을 인쳐 준다.
둘째로 성찬은 믿음으로 참여하는 신자들에게 구속 사역의 모든 충만함 안에서 그들의 구주로서 그들을 위하여 자신을 주신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약속해 줄 뿐만 아니라 모든 언약의 약속과 복음이 제시하는 모든 풍부한 것들이 자신의 것이라는 확증을 준다.
셋째로 성찬은 믿음으로 참여한 신자들에게 복음의 풍성한 약속을 준비하여 줄 뿐만 아니라, 구원의 축복들이 현실적으로 자기의 소유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신시켜 준다.
넷째로 성찬은 믿음으로 참여하는 신자들에게 서로 떡을 떼고 포도주를 마실 때마다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고백하며, 왕으로서의 충성을 서약하고 그의 거룩한 명령에 순종하는 삶을 살 것을 서약하는 신앙고백의 표지이다.
문 97. 성찬을 합당하게 받으려면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성찬
답. 성찬에 참여하려는 자는 자신에게 주님의 몸을 분변 하는 지식이 있는지, 주님을 양식으로 삼는 믿음이 있는지, 회개와 사랑과 새로운 순종이 있는지 스스로를 살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합당치 않게 성찬에 참여하면 자신에게 임할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이 됩니다.
1) 주의 몸을 분별할 줄 알 것 (고전 11:28~29)
2) 주님을 양식으로 삼는 모습 (요6:55~56)
3) 자기를 살핀 후에 (고전 11:28, 갈 5:6)
4) 잘못 참여하면 정죄가 됨 (고전 11:27)
<성찬과 그 참여자(The Person for whom the Lord's Supper is Designed)>
1) 개방 성찬식(Open Communion) 성찬은 하나님의 거룩한 은혜 언약의 수단이다. 이 성찬에 모인 회중은 하나님의 나라가 실제적으로 임재한다는 가시적인 증거와 동시에 메시아적 잔치에 참여함이다. 그리고 성찬의 집행 장소에서 그리스도와 만남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속의 완성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하지만 이러한 성찬은 참여자에게 가져다주는 유익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이 성찬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심으로 거룩한 성찬을 모독하는 죄를 범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바울은 고전 11:27절 이하에서 합당치 않은 성찬 참여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책임 아래 성찬에 참여하려는 자들에 대해서는 제한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한다. 이와 같은 논리를 ‘개방 성찬식’(open communion)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구체적으로 자기 자신이 판단해 보아서 성찬에 참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모두가 마음대로 참여할 수 있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하게 비성경적인 견해이다.
2) 제한 성찬식(Restricted Communion) 이에 대해 정당한 성찬의 집행(執行)은 ‘제한 성찬식’(restricted communion)이다. 제한 성찬식이란, 어떤 특정의 참된 교회가 다른 교회의 회원들을 무분별하게 성찬에 참여시키지 않는다는 뜻이다. 특히, 개혁파 교회와 그 신학은 올바르지 못 한수찬으로서수찬으로서 ‘불신앙자의 수찬’(receive of unbelievers)을 엄격하게 거절했다. 그 거절의 이유는 불신앙의 수찬은 다만 성찬식의 외형적인 행위에만 참여하는 것뿐으로서, 그 실체에는 참여하지 못할 뿐만이 아니라 나아가서 거룩한 것을 더럽히는 죄를 짓는 것에 의해 스스로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하게 된다고 하는 점에서였다.
이와 같이 불신앙자의 성찬 참여는 당연히 제한되는 것이지만, 신앙을 고백한 참 신자(true believers)라 할지라도 만일 그들이 의식적으로 또는 완고하게 진리에서 떠나며 혹은 거슬리는 생활을 하게 되면 그는 교통(communion)으로서의 주의 만찬에 참여할 자격을 상실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이 성찬 참여자의 자기반성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던 것이다(고전 11:28-32). 그러나 구원의 확신이 결여되어 있다고 해서 성찬에 참여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성찬은 믿음을 강화시키기 위한 바로 그 목적으로 제정된 것이기 때문이다.
3) 기도(98~99문)
문 98. 기도가 무엇입니까?-참된 기도
답. 기도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의 기원을 하나님 깨 고하고, 그의 뜻에 합당한 것을 간구하며, 죄를 자복하며, 그의 자비하신 모든 은혜를 깨달아 감사하는 것입니다.
1)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 (요 14:13,14, 16:23~24)
2) 주의 뜻에 합당하게 간구하는 것 (마 16:39,42, 요일 5:14)
3) 죄를 자복하는 것 (눅18:13)
4) 은혜를 감사하는 것 (빌 4:6)
5) 믿고 구하는 것 (마 21:22, 요일 1:9)
문 99.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지시하시려고 주신 법칙이 무엇입니까?- 기도의 법칙
답.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우리의 기도를 지시함에 유용한 것이나, 그중에서 특별히 지시하신 법칙은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 곧 일반적으로 주기도라 부르는 기도입니다. (마6:9~13)
한성기 목사님께서 자료 제공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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