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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부여

◎ 서동요와 연꽃 사진들~

by 은빛드보라(Deborah) 2010. 7. 14.

            

♡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이야기

서동공원은 조용한 시골마을 부여군에 10만 평을 조성하였다고 하는데, 연지에는 적 수련, 가시연, 황금연, 창포 등  50 종류의 연꽃이 형형색색 자태를 드러내고 있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은빛드보라 출생 이후 이렇게 많은 연꽃을 보는 것도 처음이려니와 초록빛 넓은 연잎 사이로 핀 고운 연꽃들을 보느라고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일본이나 유럽 등의 선진국들을 여행하다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도심에도 아람드리 나무가 우거진  공원들이 많다는 것과, 좁은 주택가 골목에도 화단이 예쁘게 꾸며져 있고 정원들이 무척 아름답다는 점이다. 서동공원 일대의 풍경은 마치 외국에 온 것과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나무도 꽃도 연못도 분수도 얼마나 풍성하고 싱그러운지...

수양 버드나무를 보면 버드나무 사이에서 귀신이 머리 풀고 나타날 것만 같았던 어린 시절 추억이 되살아난다. 사랑하는 친구와 단둘이 집을 출발하여 2시간 달려와서 만난 궁남지는 정말 싱그러운 초록빛 자연과 즐거운 쉼을 우리에게 한아름 안겨주었다.

삼각대를 놓고 갖은 폼을 다 잡고 있는 사진작가님을 내가 찜했다. 그리고는 다가가서 일단 디카 내밀고 미소 지으며 정중히 부탁드렸다. 저희는 사진작가님께만 부탁을 드리걸랑요(ㅋㅋㅋ. 감사)

          

왼쪽의 흰머리 여인아!  배는 왜 뚱뚜둥하게내밀고 있냐?      

연못을 빙 둘러 가면서 많은 버드나무가 심겨 있다

 

서동요의 배경 설화
백제 제30대 무왕의 이름은 장이다. 무왕의 어머니는 과부였는데, 서울 남쪽 연못가에 집을 짓고 홀로 살던 중에 그 못의 용과 정을 통하여 장을 낳았다. 무왕의 어릴 적 이름은 서동 또는 맛 둥이 었는데, 항상 마를 캐다 팔아 생활했으므로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그렇게 부른 것이다.

서동은 재능이 뛰어나고, 도량이 넓고 깊어 헤아리기 어려웠다. 서동은 신라 진평왕의 셋째 공주 선화가 세상에 둘도 없이 아름답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래서 그는 머리를 깎고 신라의 서울로 왔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마를 나누어 주니, 아이들은 호감을 가지고 그를 따랐다. 서동은 마침내 한 편의 동요를 지었다. 그러고는 마을의 아이들을 꾀어 자기가 지은 동요를 부르게 하였는데 그 노래는 다음과 같다.

『선화 공주님은 남몰래 시집 가 맛둥 도련님을 밤에 몰래 안으러 간다네.』  동요는 거리에서 거리로, 마을 아이들의 입에서 입으로 번져 드디어 대궐에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자 백관들이 동요의 내용을 사실로 믿고, 선화 공주의 옳지 못한 행실을 탄핵하여 공주를 먼 시골로 귀양 보내도록 했다. 공주가 누명을 쓰고 귀양을 갈 때 왕후는 노자로 황금 한 말을 주었다.

공주가 귀양지로 가는 길에 서동이 나타나 공주를 맞았다. 그러고는 공주에게 절을 올리고 공주를 모시고 가겠노라고 하였다. 공주는 그가 어디서 온 어떤 사람인지를 전혀 알지도 못했지만, 어쩐지 그가 미덥고 편안하게 되었다. 그런 뒤에 공주는 서동이라는 이름을 듣고서 그 동요가 실현되었음을 알았다.

두 사람은 함께 백제로 돌아갔다. 선화 공주는 왕후인 어머니가 준 황금을 꺼내어 놓고 앞으로 살아갈 일을 의논하려 하는데, 서동이 큰 소리로 웃으며 물었다. "이게 무슨 물건이오?"  "이것은 황금입니다. 이 황금만 있으면 평생 동안 편안히 살아갈 수 있을 겁니다." 공주의 말을 듣고 서동은 말했다. "내가 어려서부터 마를 캐던 곳에는 이런 것이 흙처럼 쌓여 있소. "공주는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며 말했다.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입니다. 그대가 지금 황금이 있는 곳을 알고 있다면 그 보물을 모아 우리 부모님이 계신 궁궐로 실어 보내는 것이 어떨까요?"서동은 그러자고 했다.

이렇게 해서 서동은 그 황금을 모아들였다. 둔덕만큼이나 황금을 쌓은 다음, 서동과 공주는 용화산 사자사에 있는 지명 법사에게로 가서 황금을 옮겨 갈 방법을 물어보았다. 지명 법사가 말했다.  "내가 신통력으로 보내 드리리다. 황금을 가져오시오." 선화 공주는 편지를 쓴 다음, 그 편지와 함께 황금을 지명 법사에게 맡겼다. 지명 법사는 신통력을 써서 하룻밤 사이에 황금과 공주의 편지를 신라의 궁중에 옮겨다 놓았다. 진평왕은 그 신비스러운 변화를 이상히 여기고 서동을 존경했으며, 항상 글을 띄어 서동의 안부를 물었다. 이 때문에 서동은 인심을 얻었고, 백제의 왕위에 올랐다.

포룡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