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드보라(Deborah) 2014. 5. 25. 23:34

Zagreb 발칸반도 여행의 관문, 아름다운 도시

 

1. 투어리스트 인포메이션: 한국어로 된 자그레브 안내 소책자 및 지도 구하기

2. 환전: 현금직불카드로 KN 인출

3. 자그레브 카드 구입하기: 트렘, 버스, 케이블카 무제한 탑승, 고고학박물관, 민속박물관 50% 할인

4. The Tourist Train : 외국 관광객 무료, 20분소요, Lower Town 16개의 명소, 꼬마 관광기차,

5. 시티투어: 녹색편자 루트 약 3km 인데 도보? 버스?

 

신시가지 녹색 편자 걷기: 옐라치치 광장에서 출발하여 8개의 광장이 있고, 긴 띠 모양의 잔디밭이 펼쳐져 있어 녹색편자(Green Horseshoe)라 부른다. 19세기에 대지진으로 파괴된 도시를 새롭게 설계한 레누치(Lenuci)의 작품으로, 자그레브 시민들의 휴식공간이자 크로아티아 예술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지도에 표시된 분홍색 선(60분짜리 어퍼타운 산책 루트)을 따라 걸으면 분수가 있다. 이 분수는 자연적인 샘물위에 세워졌다. 19세기 말 까지 자그레브 사람들의 식수로 사용되었던 샘물이다.

궁정의 기록에 의하면 마녀들의 주요 만남의 장소로 이 분수를 말하고 있다. 늙은 크로아티아의 전쟁 지도자가 화창한 날 전쟁터에서 돌아왔다. 목이 마르고 피곤해 아름다운 소년 Manda에게 이 샘에서 물을 한 바가지 줄 것을 요청했다. 크로아티아 말로 한 바가지 물은 Zagrabiti 란다. 그래서 이 샘물의 이름은 소녀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고, 이 도시의 이름도 한 바가지 물이라는 말에서 자그레브라고 했단다. 이 얘기에 마녀는 왜 등장할까? 그러나 자그레브의 뜻은 Za(후방, 뒤쪽), Greb(구릉, 언덕)이다.  

 

?자그레브 기차역

길 건너에 커다란 동상이 서있다. 지도를 보니 기차역 앞은 Lawer Town 으로 바둑판 같이 도로를 만들어 놓았다. 길 건너가 King Tomislav 광장이다. 헝가리로부터 크로아티아 땅을 지켜냈고, 처음 크로아티아를 통일한, 크로아티아의 기틀을 마련한 왕이다. 9세기 말 이후 비잔틴과 로마의 세력 각축장으로 변했을 때 924년 닌 의 족장이었던 토미슬라브는 이런 세력 갈등을 이용하여 독립된 왕국을 건설했다. 그는 성공적으로 교황의 인정을 받고 925년 왕관을 받았으나 3년 후에 죽고 말았다. 이동상은 붉은 대리석을 기초로 하여 역동적인 말 등에 당당히 홀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기차는 1826년에 자그레브에 들어왔고, 비엔나와 부다페스트의 경제적, 문화적 중간 지점으로 성장했다. 1892년 헝가리 건축가의 설계로 만들어졌고, 르네상스 양식과 네오크라식 요소가 가미된 멋진 건물이다. 이 역을 나오는 여행자들은 자그레브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들과 마주치게 된다. 동상과 멋진 건물들이 정면과 좌우에 위치해 있다. 정면이 The Art Pavilion이고, 왼쪽 흰색 예쁜 거물이 1925년에 세워진 Hotel Esplanade 이다. 왕의 동상에서 광장까지는 스트로마이어, 즈린스키 등 예닐곱 개의 공원이 몇 블록에 걸쳐서 있다. 이들 공원이 들어선 모습이 말발굽 같다 해서 레누치의 말발굽이라고 부른다. 레누치는 18세기에 자그레브를 설계한 도시 설계가다.

 

-중앙역 앞에서부터 나란히 3개의 광장. 토미슬라브광장/ 스트로스마예로브광장/ 슈비타 즈란스코그 광장

공원이 끝나가면 -->옐라치치 광장이 나온다 " Fries Factory "--크로아티아 국민빵집 " PAN-PEK "

싸고 맛있다!!!!!!! 폴리트비체 갈 때 사 갖고 간다.

 

 

?스테반 라디치(Radic) 동상: 가슴을 긁는 듯한 오른손과 뒷짐 진 왼손으로 서 있는 동상은 스테판 라디치이다. 크로아티아 정치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탁월한 연설가였단다. 농민당을 조직하여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의 동등 권리를 주장하는 등의 이유로 몇 번이나 투옥된 투사로 결국 벨그라드 의회 개최 기간 중에 총탄에 맞아 사망했다. 탁월한 정치가로 화폐 200 쿠르나에 얼굴이 인쇄되어 있다.

 

?Radic광장은 별로 크지 않은 광장이지만 1928년 베오그라드 의회에서 논의 중에 암살된 정치가 레디치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곳이다. Jurisiceva 거리에 그의 동상이 있다. 이 광장은 어퍼 타운으로 연결이 부드럽게 이어지는 경사진 곳이다. 긴 거리인데, 전에는 목조건물 들이 많았단다. 화제로 손상을 입었다. 19세기 와서 도시의 주요 비즈니스 센터가 되었다. 1880년에 만들어진 크로아티아 저축은행의 첫 지점이 여기 30번가에 세워지면서 발전하게 되었다.

 

중앙광장에는 성 죠지의 말탄 동상이 서 있다. 용을 죽이는 성 죠지의 테마는 이교도에 대한 기독교의

승리를 상징한다. 중세 이후에 인기 있는 모티브가 되었고, 여러 형태가 있다. 유럽을 여행하다보면 심심치 않게 본다.

 

1) 옐라치치 광장(구시가지 반젤라치크 광장)

?래디카(라디치?) 동상, 크로아티아 조각가 거장, 메스트로비치 동상, 인권기념관(아픔을 상징)

 

엘라치차는 크로아티아의 장군이며 정치 지도자다. 그는 농노제도를 폐지하고 첫 의회를 개최했다.1848년 오스트리아-헝가리로부터 크로아티아의 독립을 위해 싸웠고, 지금 그의 초상화는 20 쿠나 지폐에 올려 져 있다. 동상은 처음에 이 광장에 세워져 있었는데, 공사정권에 의해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가

1990년에 국가적인 요청으로 그의 생일 인 1016일에 다시 세워졌다. 원래 동상의 얼굴 방향이

헝가리와 오스트리아를 대항해서 크로아티아의 주권을 지키려는 상징으로 북쪽을 향했단다.

지금은 광장의 모습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남쪽을 향하게 되었단다.

 

엘라치차 광장은 자그레브 번화가의 중심이다. 광장에는 자동차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 트램만 바삐

오가고 사람들로 가득하다. 자유를 염원하던 크로아티아 인들의 정신이 담긴 엘라치차 장군 동상의

얼굴은 비엔나를 연상시키는 주택가와 번화한 쇼핑거리와 오피스가 밀집한 곳을 향하고 있다.

뒤로는 나지막한 언덕이 시작되며 Upper 타운과 Lower 타운을 자연스럽게 구분하고 있다.

 

자그레브는 1641년 이래 상업적인 도시의 중심부로 자리 잡아 왔다. 광장 주변의 빌딩들은 비더마이어 양식(판에 박힌 듯한)에서부터 아르누보양식(곡선, 비대칭)까지 그리고 포스트 모더니즘(부정) 등 아주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광장은 자그레브의 주요 시장이었다. 그러나 1848년에 공식적으로 엘라치차 광장으로 되었고, 세계 2차 대전 이후에는 공화국 광장이라고 바뀌었지만 명목상 이름이 되고 말았다. 이 광장은 자그레브 사람들의 삶에서 중앙에 위치한 곳이다.

 

가장 유명한 만남의 장소로도 유명하다. 광장 중앙에 있는 말탄 동상을 언급해서 말꼬리, 또는 광장 서쪽에 있는 시계 아래를 언급한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 세계 유명 회사들의 홍보판이 옥상에 줄지어 있다. 예쁜 꼬마 미니 열차도 돌아다닌다. 하늘색 트램이 복잡하게 돈다

 

일리차 거리: 옐라치치 광장 서쪽으로 길게 뻗은 거리. 쇼핑의 중심가

 

크로아타: 일리차 거리 초입에 있는 유명 넥타이 전문점, 넥타이의 유래가 된 크로아티아~

 

비노데카 보른스테인 카프롤 언덕 북쪽에 자리한 완인 전문점. 이스트라, 달마티아와인 무료시음

 

흐렐리치 벼룩시장: 일요일 개장. 자그레브 시민이 사용하던 모든 종류의 중고제품??

 

2) 성모승천 대성당(St Stephen성당, 자그래브 대성당) 구시가를 바라보고 광장의 오른쪽 길을 올라가거나, 옐라치치 광장을 지나 카프톨 언덕으로 오르노라면 우뚝 솟아있다. 자그레브를 대표하는 화려한 2개의 네오고딕 양식의 쌍둥이 첨탑은1899년에 만들어졌으며, 이 성당은 자그레브의 대표적인 상징물이고.

과거에 이 자리에 있었던 중세 성당의 잔해 일부를 아직도 발견할 수 있다. 성모 마리아를 주보성인으로 모신 성당답게 성당 곳곳에는 성모 마리아에 관한 예술품이 많다. 이 성당 안에선 13세기의 프레스코화, 르네상스시대의 교회 의자,대리석 계단, 바로크풍의 설교단 등이 유명하다-스테인드글라스

 

13세기 주고 스테판 2세는 타타르의 공격으로부터 지그레브를 지켜낸 기념으로 성당 옆에 교회를 세웠다. 그는 자기의 이름이자 초기 기독교 순교자 중 하나인 스테판의 이름을 따서 교회를 세웠다. 건설작업은 계속 진행하면서 예배를 드렸다. 18세기에 교회가 주교 궁전에 통합되었다. 교회에 잘 보존된 14세기 벽화는 크로아티아의 고딕 예술의 독특한 면을 보여 준다.

 

19세기 후반부터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된 네오고딕양식 구조이지만 그 건물의 기원은 훨씬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초기 고딕양식의 성소는 13세기 말에 추가되었고, 교회내부의 한가운데 중심공간은 14~15세기에 만들어졌다. 오스만 제국의 확장으로 자그레브는 적의 공습 범위 안에 들게 되었고, 적의 공격에 대비하여 포탑이 있는 외벽을 만들었다. 종탑은 침략의 위협이 사라진 후 17세기에 만들어 졌고 그 당시에 유행하던 바로크 풍의 화려하게 장식된 제단이 만들어 졌다.

 

1880년에 큰 지진이 성당에 엄청난 손상을 주었고, 그 당시 유럽 전 지역에 인기가 많았던 네오고딕 양식의 라인을 따라 재건축되었다.

성당은 자그레브의 스카이라인을 압도하는 105m 높이의 타워로 웅장한 현재의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자그레브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다. 어디서나 보이는 1093년에 헝가리 왕인 라디슬라스(Ladislas)가 건설을 시작하여 1102년에 완공했고 1217년에 성모마리아에게 헌정되었다. 성당은 높이가 77m, 넓이가 46.2m이며 두 개의 첨탑이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는데 북쪽 탑이 105m, 남쪽 탑이 104m이다. 성당 내부의 면적은 1,671로 최대 5,000명이 동시에 예배를 드릴 수 있는 큰 규모.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바로크 양식의 제단, 신고딕 양식의 제단 등이 있고 성당에만 보물급 유물이 10개 이상이 되어 '크로아티아의 보물'이라 부른다.

St Stephen성당 앞에는 예쁜 분수가 있고 금빛 성모 마리아상이 내려다보는 기둥아래 4개의 천사상이 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과 소망, 순결과 겸손을 나타낸다고 한다. 성당도 멋지지만 성당을 둘러선 성채의 모습이 더 운치가 있다. 붉은 지붕에 견고한 돌 벽이 든든해 보인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니 유럽의 성당들과 비슷하다. 성당입구로 들어서면 무려 1천 년 전, 성당을 지을 다시의 상황을 기록해 둔 크로아티아의 고대 언어가 아직 선명하게 새겨져 있어 성당의 긴 역사를 말해준다.

 

내부의 스테인드그라스도 예쁘고 3개의 십자가가 만들어진 골고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1500년경에 만들어 졌다. 제단 앞바닥에는 대주교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비 카톨릭교도들에 대한 지독한 박해를 가하면서 세계적으로 시끄러웠지만 그의 사후, 크로아티아 인들에게는 정신적 지주로 남은 인물이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대주교의 머리를 쓰다듬는 예수의 모습을 한 대리석 조각이 있다.

 

모형 유리관(스테반 대주교의 시신),

 

자그레브 대성당 광장(성모 마리아 동상과 수호천사상,분수대)

3) 성 마르코 (St Mark) 성당

성당은 1256년 세워졌고 타일 지붕은 1880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라데츠 지구의 정신적인 중심이었고 마르코브 광장 중앙에 있다. 중세 때 이 교회가 건축되면서 그라데츠 지구가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자그레브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빨강, 흰색, 파란색 채색된 타일로 만든 지붕으로 유명하며 14세기 후반에 대대적인 보수를 하여 고딕 양식으로 변했고 지붕은 3곳으로 구분되었다. 육중한 원형 기둥은 고딕 양식으로 장식한 서까래를 받치고 있고, 성당 내부는 3개의 회중석을 가진 삼각구도로 되어 있어 기품 있는 모습이다. 화려한 칼라의 모자이크 지붕/레고! 좌측은 크로아티아를 우측은 자그레브를 의미.

 

교회 재건을 위해 헌금한 이들의 이름. 오전11~4, 오후 5시반~7시 관람.

 

이반 메스트로비치의 조각들.

 

마르코브 광장 <Matija Gubec 인물조각>

성 마가 교회에서 마주하는 골목이 시작되는 건물 왼편 모서리에 재미있는 인물조각이 있다. 이 사람은 Matija Gubec 이다. 그는 1573, 인근 지역의 지주인데, 농민들에 의해 추대된 크로아티아 농민군대의 지도자다. 패배한 농민들과 함께 재판을 받기위해 자그레브로 끌려왔다. 그는 같은 해 215일에 이 광장에서 처형되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Gubec 은 둥근모양의 달궈진 인두를 머리에 쓰고 죽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왕관이 농민의 왕으로 등극하는 것이 되었단다. 건물 모서리의 얼굴이 무척 무게 있어 보인다

 

미술관: 마가교회에서 보이는 골목길 한쪽에는 미술관이 있다. 크로아티아에서 살아가던 평범한 농부와 어부 등이 그린 그림이 많다. 유독 겨울이 배경인 작품이 많은 것도 일 년 내내 바쁘게 일하다가 일손이 줄어드는 겨울에 접어들어서야 비로소 그림을 그릴 시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골목에 줄지어 세워진 건물 벽에는 테슬라의 흉상이 만들어져 있다. 테슬라의 동상은 그의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여 시내 거리에도 만들어져 있다. 크로아티아에서 태어났고 유럽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미국에서 그의 미래를 찾았다. 테슬라 덕분에 우리가 인터넷과 핸드폰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미국의 나이야가라 폭포에 동상이 있다고 한다. 폭포와 관계 없고 세계적인 물리학자이자 기계공학자로 미국으로 건너와 에디슨 공장에서 함께 일한 인물이라고 한다.

 

자그레브시의 문장은 언덕위에 우뚝 솟은 성 모양인데 그라데츠 언덕과 성을 상징한다.

지금은 옛 성벽의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성 마르크성당에서 남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그라데츠가 성벽으로 둘러싸인 요새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증거로 로트르슈차크 탑이 있다

그라데츠 언덕 13세기 타타르인들이 헝가리를 침략했을 때, 헝가리 왕 벨라 4세의 은신처가 된 곳이기도 하다. 감사의 의미로 벨라 4세는 그라데츠를 자유로운 왕권 도시로 선포하여 칙허장을 내렸고 자그레브 중심부를 내려다보는 로트르쉬차크 탑에서 매일 정오에 대포를 발포함으로써 상징적으로 재현한다.

 

로트르슈차크 탑: 전망대 오르기~ 성의 남문을 지키기 위해 13세기 중반에 건립된 탑이다. 오스만터키 군대가 자그레브에 쳐들어 왔을 때 정오에 사바강 너머에서 대포를 한발 쏘았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 대포에 영향을 받은 교회의 시계들이 동시에 울렸다고 한다. 오스만터키 군대를 불리치고 도시를 지켜낸 것을 기념하기 위한 뻥이다

 

안툰 구스타브 마토시: 은빛, 자그레브에서 만끽 할 수 있는 보헤미안적인 삶을 예찬 했던 몽상가, 시인여행작가

 

4) 돌의 문(스톤 게이트 Ston Gate):

Radic 광장에서 다시 틀어 올라가면 바로 Ston Gate가 나온다. 이문을 통해 엎타운으로 들어간다

13세기에 건설된 문으로 그라테츠(Gradec) 지역을 감싼 4개의 문중 동문에 있고, 컴컴한 굴 안쪽에는 성모마리아에게 바쳐진 작은 예배당이 있다. 촛불과 꽃으로 장식된 예배당에 성모 마리아의 성화가 걸려있다. 원래 성문에는 많은 나무 장식이 되어 있었으나 1731년 에 일어난 대화제로 나무로 된 문이 다 불탔는데 잿더미 속에서 전혀 손상되지 않은 성모마리아의 성화가 발견 되었다고 한다. 성모의 기적에 놀란 사람들은 이곳을 성지 순례의장소로 삼았고 기적의 성모가 소원을 들어준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더욱 유명해졌다고 한다. 벽에는 여러개의 돌판이 붙어있는데 HVALA(감사합니다)라는 글씨가 제일 많이 보인다현재 건축물은 1760년에 다시 건축한 것이고, 매년 531일 성모 마리아를 기리는 종교적 축제 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이 날은 자그레브 도시의 날이기도 하다.

 

사자상: 성당 내부 같은 스톤 게이트를 지나 사자상이 있는 곳에 섰다. 그 앞에는 HMS(영국 여왕의 배라는 뜻) 빅토리아 호의 체인이 있다. 현재의 위치에 있는 체인은 유명한 영국 군함에 있던 체인이다. 빅토리아호는 1805년 트라팔카 전투에서 넬슨제독이 나폴레옹 함대를 굴복시킨 가장 중요한 전함이다. 넬슨 제독은 전투의 막바지에 불행하게도 자신의 함선에서 죽었다. 그런데, 왜 이 체인이 이곳에 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성조지 동상

 

금세공장이의 보물(Statue of Dora):도라의 , 스텐게이트 오른쪽 벽에 세워진 동상의 주인공 도라는 비극적인 인생만큼이나 아름다운 미모를 자랑한다. 1871년 출간된 아우구스트 셰노아의 소설 금세공장이의 보물“ 16세기를 배경으로 귀족 남자와 사랑에 빠진 금세공장이의 딸 도라가 자신에게 청혼 했다가 거절당한 사악한 이발사에게 독살 당하고 마는 비극적인 이야기이다.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 불쌍한 소녀를 성모의 품에 맡긴다는 의미로 이곳에 조각을 세운 것인가? ”자그레브는 마을보다 더 사랑스러운 것은 오직 자그레브 여인들뿐남슬라브인들의 피를 타고 타고난 자그레브 미인들에 대한 칭찬이자 대화재와 같은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마을을 지켜온 여인들에게 보내는 찬사이다.1929년에 그의 소설을 기념하여 동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약국: 이 스톤 거리에는 자그레브에서 가장 오래된 약국이 있다. 1355년에 설립된 약국이 지금도 계속 대를 이어 문을 열고 있단다

 

 

 

 

 

 

 

 

 

 

 

 

5) 로드르슈차크(Lotrscak): 중심가에서 북서쪽에 있고 시내를 360도 돌아가며 전망할 수 있다. 13세기에 세운 시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 4~10월개방, 11~오후8입장료야경 10kn

케이블카를 쳐다보다가 뒤편에 있는 Lotrscak 타워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낡은 철문을 들어가서 타워에 오르는데, 나무계단을 한참 올라가서야 입장료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돌아내려가기도 민망스러워 입장료를 내고 올라갔다. 이 타워는 Kula 타워라고도 한다. 이것은 성채에 있는 요새로 중간에 대포가 있다.

 

꼭대기에는 작은 전망대가 있다. 유일하게 잘 보존된 18세기에 만들어지고 19세기에 수정된 중세 탑이다. 주민들은 이 타워에서 해가 질 때 울리는 벨소리를 듣고 마을로 돌아갔다. 그리고 성채의 문들은 닫힌다. 요즈음에는 이 탑에서 정오에 매일 터지는 대포 때문에 더 유명해 졌다. 이 대포를 쏘는 전통은 1877년 설날부터 시작되었다. 대포를 매일 쏜다는 조건으로 Tatars 족의 약탈을 보상하고 또 보호하는 의미로 헝가리 왕 벨라 4세가 주민들을 위해 설치해 주었다고 한다. 또는 터키에 대한 승리의 기쁨이라고 한다. 주민들은 곳곳에서 들을 수 있는 이 대포소리를 시계 삼아 살고 있다전망대에서 보니 자그레브 시내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주황색 지붕이 일색이다. 첨탑이 있는 스테판 교회도 보인다. 지붕타일이 인상적인 성 마가교회도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Strossmayer 산책로를 북쪽으로 걸어가니 그림을 파는 노천 가게들이 있다.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고 전시하며 판매도 한다. 음악도 부드럽게 흘러나와 쉬기 좋다

 

6) 돌라츠(Dolac Market)재래시장: 옐라치치 광장 북쪽골목 계단. 카프톨과 그라데츠 두 마을은 종교와 상공업 중심지로 공생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서로지지 않겠다고 자존심 경쟁을 벌였는데 두 마을의 경계를이루는 개천을 사이에 두고 어찌나 자주 싸웠든지 폭력사태도 종종 벌어지곤 해서 개천의 다리를 피투성이의 다리(Bloody Bridge) 라고 불렀다.

언덕 사이에 자리한 돌라츠는 두마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는 만남의 장소가 되었고, 나중에는 교외에 사는 사람들까지도 찾아와 생필품을 팔고 사는 생업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과일, 채소, 고기, 생선, 등의 모든 식료품을 살 수 있기 때문에 자그레브의 배”(The Belly of Zagreb)라고 불린다. 잡화 골동품, 기념품, 관광객이게 인기 만점. 리치타(Licitar) 집에서 직접 만들어 파는 신선한 치즈에서부터 지중해의 햇살과 아드리아 해의 바람을 맞으며 통통하게 과육이 차오른 청포도, 토마토, 오렌지, 사과, 복숭아와 갖가지 야채를 팔고 있다. 아름다운 각양각색의 꽃들도 팔고 기념품가게도 있다.(과일 산다)

 

엘라치차 광장과 이어지는 계단 시작점에는 머리에 무거운 바구니를 인, 강해 보이는 여인의 동상이 있다. 머리에 보자기를 쓰고 앞치마를 두르고, 서 있는 모습이 무척 단단해 보이고 억척스러워 보인다.  

 

트칼치체바 거리: 돌라츠시장 북쪽 인쪽 내리막길, 노천식당의 다채로운 거리옛날 카프톨과 그라데츠 두마을의 경계를 이루던 개천을 매워 조성한 거리로 카페와 레스토랑이 즐비하다

 

카바(Kava)커피: 진한 에스프레소 스타일의 크로아티아 커피

 

7) 미르고이 묘지: 옐라치치 광장에서 북쪽으로 약2.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묘지.1876년 크로아티아의 건축가 헤르만 볼레에 의해 설계되었으며,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묘지 중 하나로 손꼽힌다. 둥근 지붕으로 덮인 회랑이 인상적이며 메슈투로비치를 비롯한 유명 예술가들이 만든 조각과 무덤을 감상할 수 있다. 몇몇 화려하고 큰 묘지가 있으며, 19세기 네오-르네상스 스타일의 긴 회랑에 둘러싸인 영국풍의 경치

 

8) 보타니칼 가든(무료)/ 민속박물관, 미마라박물관,크로아티아 국립박물관,-구시가지의 광장

 

우스피냐차 케이블카-세계에서 제일 짧은 케이블카이다...어퍼타운과 다운 타운을 연결하는 66m 길이로, 세계에서 가장 짧은 것이다. 위쪽과 아래쪽 사이의 높이 차이는 30.5m . 올라가는데 55초 걸리고, 28명의 어른들이 한 번에 탈수 있고 매 10분에 올라간다. 처음에는 말을 이용해서 물건을 실어 올리는 용도로 사용되었으나, 1890년 승객을 위해 증기로 움직이도록 바꾸었다. 자그레브에서 사용된 첫 공공 이용 수단이었단다.

 

고고학막물관(20) :세계 다른 박물관처럼 선사시대, 중세 역사적 유물들, 이집트 미이라 등이 전시되어

있다. 바깥 뒤쪽 뜰에는 로마조각이 있다.

 

미마라Mimara)박물관(40):유럽 최고의 현대미술 전시관 중의 하나. 네오-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에 위치

한 전시관에는 값을 매길 수 없는 작품들을 기증한 안테 토피치 미라마(Ante Topic Mimara)의 개인 소

장품을 전시하고 있다.스페인, 이탈리아, 네덜란드 회화들이 최고의 볼거리이며, 또한 유리공예품,

, 동양 미술품 등이 있다.

 

민속학막물관(15)

 

크로아티아 국립박물관(무료)

 

막시미르(Maskmir)생태공원 식물원 동물원 6만평

 

? 블라츠카(Vlaska) 거리: 이 거리는 전통적인 수공업이 이루어지고 동화처럼 잘 보존된 독특한 거리다. 카피톨 지역의 벽을 따라 만들어 졌는데, 원래 이탈리아 무역업자들이 정착했던 거리란다.

오래된 크로아티아 말로 이탈리아 사람을 Vlasi 라고해서 거리의 이름이 블라츠가로 불리게 되었단다.

유명한 소설가이자 시인이고 극작가인 어거스트 세노아 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그를 기념하기 위해

광고탑 기둥에 기대어 서있는 동상이 만들어 세워졌다. 광고탑 기둥에는 그가 사랑했던 자그레브,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도시를 예찬하는 그의 시가 새겨져 있다.

 

? Tkalciceva 거리: Dolac Market에서 시작한다. 시장과 붙어 있는 성 마리 교회를 찾아가서 오래된

문과 바로크 풍의 모습을 확인했다. 그 다음 찾아간 곳이 오래된 거리 한편에 우산 들고 서 있는 중후한 여성 동상이 있는 곳 Tkalciceva 거리다. 의심의 여지없이 자그레브에서 가장 화려한 다운타운이 바로 이 거리다. 일반적으로 Tkalca 라고도 한다. 이 길은 작은 강 방향을 따라 만들어진 KaptolGradec 의 정착민 사이의 전통적인 경계다. 서쪽은 세속적인 Gradec 에 속한다면 작은 강의 동쪽은 성스러운 교회의 영지인 캅톨 지역이다

 

? 캐서린 교회: 캐서린 광장에 있는 자그레브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로크 양식의 교회다. 17세기 전반에 예수회에 의해 지어졌다. 이 교회는 단일 통로와 6개의 측면 예배 처소를 갖고 있다. 17세기 후반까지는 5개의 바로크 풍의 나무 제단이 있었는데, 1729년에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제단이 하나 추가되었고, 외관은 1880년 지진 후에 다시 지어졌다

?Strossmayer 산책로

 고목들이 줄지어 서 있는 언덕. Gradec 언덕의 남쪽 가장자리를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는 시민들이 기부한 돈으로 19세기에 만들어졌다. 크로아티아의 문예부흥과 19세기 사회와 정치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 Strossmayer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산책길이다. 인근에는 크로아티아의 기상청이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소설가 o씨가 만난 마토스라는 시인의 동상이 있다. 동상은 벤치에 앉아 시인 마토스(1873~1914)가 자그레브 시내를 내려다보는 모습이다. 생전에 그는 이 자리를 가장 좋아 했단다.

 

자그레브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이 도시를 가장 사랑한 사람 중에 하나였다. 마토스는 혼란한 시기에 크로아티아 인들에게 용기를 주는 글을 많이 써서 국민들의 사랑을 받은 인물이다. 솔직하고 희망을 주는 문체로 신문 칼럼을 쓰고, 크로아티아 언어로 시를 써서 대중으로부터 가장 사랑을 받는 시인이 되었다. 우리나리 서정주 같은........이 동상은 1978년에 이곳에 만들어 졌다. 그의 시 밤이 오면이라는 글이다.

 

늘에서 평온함과 고요함이 내리고

까만 탑에서 우리는 졸리는 듯한 시계소리를 듣고

저 높은 곳의 빛은 서서히 사라져 간다.

 

 

 

 

 

 

 

 

 

Zagrab

크로아티아 공화국의 수도인 자그레브는 1094년에 주교구로서 유럽 지도상에 출현했다.

역사 깊은 두 개의 언덕인 그라덱Gradec 과 캅톨Kaptol 부근에 세워져서 메드베드니차 Medvednica

산등성에 위치해 있는 자그레브는 메드베드니차와 사바 Sava강 사이의 평원에 자리잡고 있다.

20세기 후반에는 이 도시는 강 건너편까지 확대되었고 대도시로 성장하였다.

 

오늘날, 자그레브는 마치 각기 다른 모습을 가진 세 개의 도시를 포함하고 있는 듯하다.

상부 도시(Upper town)는 지난 시절의 평화와 고요가 매혹적인 곳이고

하부 도시(Lower town)는 유럽의 거대 상업도시에 비길 만큼 활기찬 지역이다.

신 자그레브(New Zagreb)라고 불리는 지역은 현대 건축과 도시화의 전시장을 연상케 하는 모던한 분위기를 띄고 있다. 종교적, 비종교적 기념물과 거리, 광장, 공원들의 디자인에서 역사의 매 시기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다양하고 매력적인, 정신문화와 예술의 도시,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간직한 도시이다.

 

탁 트인 광장과 공원이 많다. 크로아티아의 문화 중심지이며 과학 예술 아카데미와 대학교가 있다. 여러 미술관에는 옛날과 근대 작품들이 모두 소장되어 있으며 다 양한 미술관, 극장, 음악당과 박물관이 많다. 중세 시대의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다.1860~1914년에 급속히 성장하면서, 이 도시는 서부, 중부 유럽에서 아드리아 해와 발칸반도로 이어지는 도로와 철도망의 주요 연계지이며 지역 산 석유와 천연가스를 기반으로 대규모 화학공업이 발달하여 공업의 중심지로 자리 잡고 있다.

 

자그레브는 자그레바치카 산의 경사면과 사바 강의 범람원에 걸쳐있다. 경사면 지역을 Upper Town,

강변 평야 지역을 Lower Town 이라고 한다. 구릉 위의 구 시가지는 2개의 중세 부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치(아랫마을)는 민간 마을로 13세기 투르크 인 들을 막기 위해 성벽으로 마을을 둘러싸면서 그라테츠(요새)로 개칭되었으며, 카프톨(윗마을)은 성직자 마을로16세기에 요새화 되었다. 이 두 마을은 서로 경쟁했으나, 19세기에 새 건물들이 많이 세워져 이두 마을이 이어지고, 남쪽으로 광장과 공공건물들로 된 직선형의 신도시가 생기는 등 시가지가 사바 강 주변까지 확장 되면서 경쟁관계가 끝났다.

 

 

 

두 개의 언덕에서 시작된 Zagreb /우물에서 유래한 도시

600년경 크로아티아인이 카프톨과 그라데츠 라는 두 개의 언덕위에 작은 마을을 세웠는데, 이 후 이 두 마을은 중세시대에 발전을 거듭하여 지금의 자그레브를 이루었다고 .종교(카프톨)와 상공업(그라데츠 )의 중심지로 대립과 화해를 반복하며 각자의 길을 걸어가던 두 마을은 17세기에 이르러 자그레브라는 이름으로 합쳐졌다.17~18 세기에는 두 언덕에 바로크양식의 건축물이 세어졌고 호화로운 궁전과 교회 및 상공업이 발전 유럽 각지의 부유한 귀족, 성직자,지식인,상인들이 찾아오면서 수도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188011월 대지진으로 도시가 파괴되자 공공 건축물과 공원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신시가지를 조성하게 되었고 트렘과 자동차등 교통기관을 위한 인프라도 구축 되어 근대적인 도시로 태어나게 되었다. 구시가를 제외한 자그레브의 대부분의 모습은 이시에 형성 된 것이다.

 

유고 연방시절 베오그라드에 이어 공화국 내 두 번째 도시로 머물렀던 자그레브는 1991년 크로아티아가 연방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수도로서의 권위를 되찾았다. 현재는 크로아티아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자 유럽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 중의 하나가 되었다. <어느 멋진 일주일: 크로아티아,이준명>

 

유구한 역사의 중유럽 도시이자 크로아티아 공화국의 수도인 자그레브는 역사 깊은 두 개의 언덕인 그라덱Gradec 과 캅톨Kaptol 부근에 세워져서 메드베드니차 Medvednica 산등성에 위치해 있고 메드베드니차와 사바 Sava강 사이의 평원에 자리 잡고 있다.

 

20세기 후반에는 이 도시는 강 건너편까지 확대되었고 대도시로 성장하였다. 오늘날, 자그레브는 마치 각기 다른 모습을 가진 세 개의 도시를 포함하고 있는 듯하다. 상부 도시(Upper town)는 지난 시절의 평화와 고요가 매혹적인 곳이고 하부 도시 (Lower town)는 유럽의 거대 상업도시에 비길 만큼 활기찬 지역이다. 그리고 신 자그레브(New Zagreb)라고 불리는 지역은 현대 건축과 도시화의 전시장을 연상케 하는 모던한 분위기를 띄고 있다.

 

성 마르크 성당: 라데츠 언덕을 거의 올라오면, 1256년에 세워진 이다. 지붕의 타일은 1880년에 만들어졌다, 문양 중 왼쪽은 중세의 크로아티아 왕국, 달마티아 지방, 슬로보니아 지방을, 오른쪽은 자그레브 시를 나타내는 문장이다. 언덕 위에 우뚝 솟은 성 모양으로, 그라데츠 언덕과 성벽을 상징한다. 지금은 옛 성벽이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성 마르크 성당에서 남쪽으로 조금 간 곳이 그라데츠가 성벽으로 둘러싸인 요새였다고 약 100만 명이 살고 있는 자그레브는 크로아티아 인구의 1/4이 거주하고 있다 한다.